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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茶文化

  중국인의 인생관


중국인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려면 그 문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기저에 내포된 생활관이나 인생관을 이해하지 않고, 그 문화를 논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되며, 중국인의 인생관 또는 생활철학에 대한 보편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바를 이해함으로써 좀 더 풍성한 차문화를 그려보는 것도 유익하다고 여겨진다.

중국인 인생관은 크게 보면 공자, 맹자로 이어지는 인본주의 철학과, 노자, 장자로 어어지는 자연주의 철학으로 나누어지고,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중용철학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결국 이 중용철학이 중국인의 인생관과 생활관에 뿌리내려 지금 중국인의 사고에 대한 원형으로 자리잡아 일상 생활로 이어지게 되었다.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하는 조선 사회에서도 쉽게 뿌리를 내려 선비의 표본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특히 세상이 어지러울 때 세상에 나와 자신의 학문을 펼친 후, 고향으로 돌아가 후학을 가르치면서 자연을 벗삼아 유유자적 삶을 보낼 수 있었던 바탕이 아닌가 한다.

세상살이에 그렇게 연연해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세상과 단절하고 숨어버리는 것도 비이(非理)라고 여기면서 자연의 삶을 닮아가려는 듯. 살아가기 힘든 추운 날을 이기면 따사로운 봄을 맞이 하겠지 하는 그런 기대감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더운 여름이 오면 고난의 계절을 준비하는 그런 마음.

낮에는 농사를 짓고 밤에 불 밝혀 글을 읽고 흥이 나면 시 한수 읊을 정도의 지식.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쉴 수 있을 정도, 친구들에게 술한잔 얻어마시거나 사줄 수 있을 정도의 생활. 이런것이 중국인 대부분에게 발견되는 가장 건전한 이상적인 생활이 아닌가 하고 생각된다.

이밀(李密)이 지은 "중용가(中庸歌)" 속에 잘 그려져 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중용이 제일이거니,
믿고 살아 왔다네. 한데 이상도 하지
이 "중용" 씹으면 씹을수록 단맛이 나네.

자아, 이렇게 되면 무엇이고,
중용을 택하여 당황하지 않고,
서두르지 않으니 마음은 편하기 그지 없는 것.

하늘과 땅 사이는 넓디 넓은 것.
읍내와 시골 사이에 살며
산과 개울 사이에 농토를 갖네.

반은 선비요, 반은 농사꾼일세.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노네.
아랫사람들도 적당히 구슬리네.

집은 너무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초라하지도 않으니,
가꾼 것도 절반이요 안 가꾼 것도 절반일세.

입은 옷은 낡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새로 장만한 것도 아닐세.
너무 좋은 음식도 먹지를 않고,
하인배는 바보와 꾀보 중간내기라.
아내는 너무 똑똑하지도 않고 너무 단순치도 않으니,

그러고 보면 이내 몸은 반 부처에
반은 노자라고 할 수 있을 듯.
이 몸은 절반은 하늘로 돌아가고,
나머지 절반은 자식에게 물려 주니,
자식 생각도 잊지는 않지만,

죽은 뒤 염라대왕에게 아뢰올 말씀,
이렇게 말할까 저렇게 말할까 궁리도 절반.

술도 알맞게 취하면 그걸로 좋아.
꽃도 볼 품은 반쯤 핀 것이 제일이로세.
반쯤 돛을 올린 돛단배가 안전하도다.

보물이 너무 많으면 걱정이 많고,
가난하면 물욕(物慾)이 생기니 그도 탈일세.
인생은 쓰고도 단 것이니 깨닫고 보면
그 한가운데 절반 맛이 제일이구나.

여기에서 보듯 노장철학에서 보는 염세적 자연주의와 공자철학의 적극적인 인본주의가 하나로 융합되어 중용의 철학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중용원형의 중심에 중국역사를 통털어 최대의 시인이라 불리우며, 최고로 조화된 인격자라는 도연명(陶淵明)의 생활에서 그 전형을 찾게 되며, 그의 글은 중국고전 소개서에 빠지지 않으며, 또한 많은 지식인들이 그의 삶을 표본으로 여겼으며, 어려운 시대시대 마다 이를 지탱하는 정신적인 지주가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도잠(陶潛, 淵明, 365-427)의 귀거래사(歸去來辭)는 그의 사상의 중심이다. 이글은 기원 405년 11월 지방관리의 자리를 내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려고 결심했을 때, 그가 지은 글이다.

내 집은 가난하여,
耕植만으로는 자급이 충분치 못하다.
어린 것들이 집에 여럿있고,
뒤주에는 들어 있는 쌀이 없다.
一家의 생계를 원만하게 해나갈 수 있는 물질이 없다.
그 방법을 모르는 것이다.

친척이나 친구들은 長史,
즉 縣吏라도 해보라고 한다.
아전이라도 되어서 좀 나은 생활을 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그래서 脫然히 생각을 가다듬고
그 권고대로 해보려고 했으나,
아전이 될 길이 없다.
길이 없는 것을 어찌하겠는가?

다행히 사방으로 쏘아다니는 몸이 되어,
어쩌다가 諸侯와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諸侯는 惠愛로써 德을 삼고 은혜를 베풀려고 한다.

거기에 家淑이 내 貧苦를 가엾이 여겨 힘쓴 결과
마침내 한 작은 邑의 長이 되게 되었다.

세상은 아직도 風波가 평온하지 못한 때였고,
따라서 마음은 遠役을 꺼리었다.

彭澤은 집에서 1백리 떨어진, 그리 먼곳은 아니다.
公田의 이익으론 술을 만들기에 족하다.
따라서 이 팽택으로 가서 彭澤令이 되었다.

그런데 그러기 얼마 안 되어
眷然히 돌아서고 싶은 생각이 났다.
왜냐하면,
원래 質性이 自然을 좋아하고, 규칙생활이 싫다.

웃사람에게는 아첨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떵떵거리는
아전들의 생활태도가 싫다.
그런 모든 것이 싫은 때문이다.

飢凍, 즉 춥고 배고픈 것은 간절하지만,
그러나 내 자신 성품을 어기면 오히려 병이 된다.

뿐만아니라, 세상 일에 종사하는 것은 결국 "口復自役"
스스로 먹기 위해 일하는 것일 뿐 아니겠는가.
즉, 먹기 위해서 스스로 목을 매는 것이 아니겠는가.

여기서 창연히 강개하여,
평소의 뜻이 잘못된 것을 싶이 부끄럽게 여기었다.

그러나 아직도 1년쯤은 더 公事를 위해 힘쓰고 싶었지만,
불행하게도 程氏에게 시집간 누이가
武昌에서 죽었다는 부고를 듣게 되었다.

마음은 그쪽으로만 달려,
어쩔 수 없이 公職을 스스로 그만두고 떠나갔다.
仲秋에서, 겨울, 官에 있는 지 불과 80여일 밖에 안 된다.

이 사실에 의해서, 내 마음에 따라,
篇을 이름짓길 "歸去來兮"라 하는 바이다.

- 本文 -

돌아가리라!
田園이 거칠어지려 하건만 어찌 돌아오지 않을 수 있으랴.
이미 나 자신 마음을 육신의 노예로 삼았거니,
어찌 헛되이 홀로 슬퍼만 할 것인가.
기왕에 지나간 일 어쩌겠는가?
이제부터 닥치는 것이나 잘하면 되겠지.

진실로 길을 잡았으나, 그렇다고 그 길이 먼 것은 아니다.
멀리 깊이 들어온 것은 아니다.
오늘이 옳고 어제는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다.

배는 유유히 물위로 미끄러져 가고,
바람은 표표히 옷깃을 날린다.
길손에게 前路를 물으니,
동트는 새벽의 희미함이 원망스럽도다.

이윽고 초라한 내 옛집 지붕을 바라보고,
기뻐서 걸음을 채촉하노라.
하인들이 나를 반겨 인사를 하고,
애들은 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는 구나.

정원의 오솔길은 거칠어졌으나,
아직도 국화와 소나무는 남아 있구나.
한 손에 제일 어린 것 손을 잡고 방 안에 들어가니,
탁자위에 술이 가득차 놓여 있도다.

술병과 술잔을 가져와 스스로 술을 마시고,
마당의 나무를 기쁘게 바라본다.
남창에 기대어 앉으니,
방은 좁으나마 왔다갔다하기에 충분하니,
내 편한함을 얻기에 족함을 알겠구나.

거칠었던 정원도 이제는 날로 모양을 달리해 간다.
문은 마련되어 있으나 언제나 닫은 체이고,
때로는 지팡이를 짚으며 고요히 거닐다가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 본다.

구름은 무심히 산 기슭 먼 곳에서 나오고,
새는 나는 것이 지쳐 돌아가는 구나.

해 그림자는 뉘엇뉘엇 어둠이 찾아 드는데,
나는 아직도 외로이 서 있는 소나무를 어루만지며
그 주위를 돌고 있노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으니
이제부터 홀로 살아갈 법을 배우고자 한다.
세상과 이몸은 서로 인연이 없거니,
다시 무엇을 찾아 세상에 나가지 않겠다.

친척과 이야기를 나누는 데 정을 붙이고,
음악과 독서로써 시간을 보내리라.
농부가 찾아와 이곳에 봄이 왔음을 알리면
그때 서쪽 밭에 할 일이 있겠지.

때로는 달구지를 몰고, 때로는 노를 저으리라!
때로는 조용한 골짜기를 찾고,
때로는 험한산을 오르리라!

나무는 끝도없이 자라고,
샘물을 끊임없이 흐르는 구나.
만물이 생기고 없어짐이 때에 따름이니,
지금의 내 삶이 여유를 찾을 때구나.

어쩌라. 형상을 가진 만물은
반드시 태어남이 있고 죽음이 있는 것인데,
가고 옴에 공연히 수선을 피워 무엇하겠는가?

이제, 부귀도 내가 바라는 것 아니니,
경성에 발을 들어 놓을 일 없네.
청명한 날에 홀로 거닐고,
때로는 지팡이를 한 옆에 놓아두고 김을 맨다.

동고(東皐)에 올라 세상을 외쳐보기도 하고,
맑은 시냇물 근처에서 시를 지으리라!

그리하여 기꺼이 살다가 기꺼이 죽으리라!
그래서 천명을 즐길 뿐,
또 무엇을 의심하겠는가?


 - 작성일 : 1997.08.30일

 - 작성자 : 不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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