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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中國茶文化

  문헌에 나타난 다(茶) 글자


茶

기원전 246년 10대 소년으로 진나라 왕좌에 오른 진시황에 의해 중국대륙이 통일된 뒤 군사 요충지 확보 등으로 어느정도 교통이 발달되었다고 하지만 아직 변방지방의 생활권은 여전히 단절되어 있었고, 문화 또한 각자의 환경이 맞게 전개되고 있었다. 차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부르는 언어나 마시는 풍습, 차나무의 품종 및 외형 등도 각각 달랐다.

각 지역어로 차에 대한 이름이 붙여지고, 어느지역은 차잎을 약용으로 , 식용으로, 음용으로 이용되기도 하고, 차나무라 불리는 품종도 관목, 교목, 반교목 등 여러가지 종류가 있었으며 차잎의 외형 또한 지역에 따라 여러 형태가 있었다.

이런 배경속에서 605년에 등극한 수양제는 광활한 중국대륙을 편리하게 통치하기 위하여 중국의 남북을 잇는 대운하(大運河) 건설에 국력을 모으게 된다. 이 대운하로 인해 남쪽 화남(華南) 지방에서 생산된 茶를 화북(華北) 지방으로 운반하면서 비로소 북쪽 지방사람들이 차를 접하게 된 것이다.

한편 고구려와의 영토분쟁에서 너무 많은 국력을 소모한 수나라 (589-618)는 곧 멸망하고 뒤이어 당나라 (618-907)가 들고, 당나라 중기에 이르자 교통은 더욱 발달되고 그 이전의 단편적인 차문화도 차츰 대중적으로 보편화 되면서 각 지방별로 부르던 수많은 차잎의 이름은 결국 하나의 차나무요, 공통된 차잎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바탕위에 차(茶)이름에 대한 여러가지의 유래를 보면 한(漢)나라 이전의 문헌상 가장 먼저 차이름으로 나타나는 것은 고로(皐蘆)이다. 고로는 고채(苦菜)의 회역음자 (回譯音字)이기도 하다. 그외 과로(瓜蘆), 가(가), 고도(苦도), 태채(苔菜)라는 글자가 차이름으로 불리워졌다.

한나라 때 신농본초(神農本草) 와 신농식경(神農食經)에서는 도명(도茗) 이라했고, 사마상여(司馬相如)의 범장편(凡將篇)에서는 천타(천타), 양웅(楊雄)의 방언(方言)에서는 설(설)이라 했다.

위(魏)나라 때 오진(吳晉)의 본초(本草)에서는 고채(苦菜), 도초(도草), 선(選) 이라 했고. 장읍(張揖)의 광아(廣雅)에서는 명(茗), 유동(遊冬), 고채(苦菜)라 했다.

북위(北魏)때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에서는 수액(水厄)이라고도 했고, 진(晉)나라 때 곽박(郭璞)의 이아주(爾雅注)에서는 차(茶), 천(천) 이라 했다. 그외 방도(芳도), 도명(도茗), 도과(도果), 도음(도飮) 등으로 불리워졌다.

당(唐)나라 때 육우(陸羽)는 "차(茶), 가(가), 설(설), 명(茗), 천(천)"의 이름만 선택 정리하여 그의 다경(茶經)에 수록한 후 9세기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차(茶)라는 글자로 정립되었고, 오늘날까지 차(茶)로 불려지게 되었다.


 - 작성일 : 1997.12.5일

 - 작성자 : 不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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