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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뒷모습(背影)


- 序 -

주자청(朱自淸) 선생이 쓰신 수필 중에 아마 일반인들에게 제일 많이 읽힌 글일 것이고, 개인적으로도 수십번은 읽었고 지금 읽고 있다. 우리가 아는 중국문호들이 쓴 백미(白眉)의 글인 도연명의 귀거래사나 소동파의 적벽부 등도 일상의 소재를 진솔하게 표현하였기에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 本 -

벌써 2년이 넘도록 아버지를 뵙지 못했다. 지금도 가슴을 허비는 것은 내 아버지의 그 뒷모습이다.

그해 겨울, 별안간 내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데다가 내 아버지마저 실직하셨으니, 우리 집의 불행은 겹으로 닥친 셈이었다. 나는 북경(北京)에서 부음을 받고, 아버지와 함께 집에 가려고, 그때 아버지가 계시던 서주(徐州)로 갔다.

서주 집은 살림이 엉망인 채 지저분했다. 생전에 단정하셨던 할머니 생각이 왈칵 덤벼와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상고(喪故)와 실직을 함께 당하신 아버지께서 그런 경황 중에서도 침착하게 말씀을 하셨다.

"기왕 당한 일을 어쩌하겠니? 또, 산 입에 설마 풀칠이야 못 할라꼬?"

우리 부자(父子)가 집에 돌아가, 팔 것은 팔고 잡힐 것은 잡혀서 빚을 갚았지만, 할머니 장례로 진 빚은 고스란히 남았다.

할머니와의 사별과 아버지의 실직은 참으로 우리의 앞길을 참담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헛간 같은 집에 그냥 머물러 있을 수는 없었다. 아버지께선 남경(南京)으로 가 직업을 구하셔야 했고, 나는 북경으로가 학업을 계속해야 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남경으로 갔다. 남경에서는 친구의 만류로 하루를 쉬었고, 이튿날 오전에 포구(浦口)로 건너가 오후에 북경행 기차를 타기로 했다.

그때, 아버지께선 볼일로 해서 역에 나오지 않기로 하셨다. 그 대신, 여관에 있는 잘 아는 심부름꾼더러 나를 배웅하도록 당부하셨다. 그것도 서너 번씩이나 신신당부하셨다. 그러나 막상 내가 떠날 무렵이 되자, 도저히 안심이 안 되시는지 자꾸만 머뭇거리셨다.

사실 그때 내 나이 스물이나 되었고, 또 북경에도 벌써 두어 차례나 왕래했던 터라, 어버지께서 그토록 염려하실 것은 없었다. 그런데도 어버지께선 불일을 제쳐 놓으시고 친히 나를 배웅하기로 결정하셨다. 몇 번이나, 그러실 것 없다고 사뢰어도 "아니야, 그까짓 놈들이 무엇 해!" 하시며 따라 나오셨던 것이다.

우리는 강을 건너서 역으로 들어갔다. 내가 차표를 사는 동안, 아버지께선 짐을 지키고 계셨다. 짐이 많아서 역부에게 돈푼이라도 주면서 옮겨야 했다. 역부들과 한바탕 흥정을 벌이셨다. 그런데 닳아빠진 그네들과 흥정을 하시는 아버지 말씀이 시원스럽지 못해 내가 참견을 했다.

결국, 아버지의 고집대로 흥정이 떨어지자 역부들은 짐을 실었고, 나는 기차에 올랐다. 아버지는 찻간까지 따라 오르시더니 차창 쪽으로 자리를 잡고 나는 그 위에다 아버지께서 사주신 자주색 외투를 깔았다. 어버지는 나더러 도중에 짐을 조심하고 감기 안 들게 주의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판매원을 붙들고 나를 잘 보살펴 달라고 연신 허리를 굽히며 당부하셨다.

나는 속으로 세상 물정에 어두우신 아버지의 순박하심을 비웃었다. 그들은 겨우 돈이나 아는 사람들, 왜 그렇게 쓸데없는 부탁을 하실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나도 나이 스물인데 설마 내 일 하나 처리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아버지, 인제 들어가셔요."

아버지는 창 밖을 지켜보며 무슨 생각에 잠기시더니, "얘! 귤이나 몇 개 사올 테니, 여기 가만히 앉아 있거라" 하고 말씀하셨다.

플랫폼 저쪽 울타리 밖으로 창수 서넛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저쪽 플랫폼으로 가려면 철로를 건너야 했다. 그런데 그리고 가려면, 이쪽 플랫폼을 뛰어내려서 저쪽 풀랫폼의 벽을 기어올라야 했다. 그것은 뚱뚱하신 아버지로선 여간 힘드시는 일이 아니었다. 마땅히 내가 가야 할 걸 한사코 당신이 가시겠다고 하시니, 어쩔 수 없었다.

까만 천으로 된 둥근 모자를 쓰시고, 까만 괘자에 진한 쪽빛 무명 두루마기를 입으신 어버지께선 좀 가우뚱하셨지만, 조심스럽게 허리를 굽히고 플랫폼을 내려가셨다. 그러나 철로를 건너고 저쪽 플랫폼의 벽을 기어오르실 때의 모습은 여간 힘들어 보이는 게 아니었다. 아버지께서 두 손을 플랫폼 위 시멘트 바닥에 붙이고, 두 다리를 비비적거리며 위쪽으로 발버둥쳐 올라가시다 순간적으로 왼편으로 기우뚱하실 때 아, 이 아들의 손엔 땀이 흥건했다.

나는 그때,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것이다. 나도 모르게 뺨을 적시는 뜨거운 것이 있었다. 나는 얼른 그것을 닦았다. 아버지께 들킬까봐, 그리고 남이 볼까봐 두려웠다.

내가 다시 창 밖으로 눈길을 돌렸을 때 어버지께선 빨간 귤을 한아름 안고 이쪽으로 오고 계셨다. 이번에는 먼저 귤을 홈 위에 놓고, 조심조심 플랫폼을 기어 내려와서, 다시 그 귤을 안고 철로를 건너오셨다. 이 만큼 오셨을 때 묻은 흙을 툭툭 털면서 가벼운 한숨을 수었다. 그러고는 곧 밖으로 나가시면서,

"나, 이만 간다. 도착하면 곧 편지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승강구를 내려 몇 걸음 옮기시더니만 다시 뒤를 돌아보시며, "들어가라. 아무도 없는데 ....." 하고 말씀하셨다. 아버지의 뒷모습이 인파에 묻히자, 나느 자리로 돌아왔다. 눈물은 또 한번 쏟아졌다.

요 몇 년 동안, 우리 부자는 각각 타향에서 동분서주해봤지만, 집안은 갈수록 기울어갔다. 젊었을 적에는 살림을 일으키려고 혼자 타관 하늘을 떠돌며 일도 많이 저지르셨지만, 노경에 들어 이렇게 참담하게 되실 줄이야 누가 알았으랴! 또, 당신은 쓸쓸한 만년이 주는 괴로움을 어떻게 견디셨을까? 그래서 사소한 집안 일에 지나친 분노를 토하시기도 하였다. 물론, 나에게도 지난날 처럼 인자하시기만 하진 않으셨다.

그러나, 뵙지 못한 2년 동안, 아버지께선 나의 지난 잘못은 모두 잊으시고 오히려 나와 내 아이들 걱정만 하셨다. 어느 날인가, 나는 북경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일이 있었다. "늙은 몸이지만, 그런 대로 지낸다. 다만, 어깻죽지가 무거워 젓가락을 들거나 붓을 잡기에 불편하구나. 아마 갈 날도 멀지 않은 모양이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 왈칵 솟은 나의 눈물 방울엔, 마괘자에 그 쪽빛 두루마기를 입으신 아버지의 뒷모습이 굴절되고 있었다. 아, 다시 뵐 날은 ....... (1925년 10월 북경에서)


 - 자료출처 : 범우문고058 - 아버지의 뒷모습(背影)

 - 지은이 : 주자청(朱自淸)

 - 옮긴날짜 : 2002년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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