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프로필

Contact Us

 茶인연

 茶詩民謠

 茶文化史

 茶人

 茶/茶器/茶具/茶田

 茶寺

 茶文獻

 中國茶文化

 中國茶

 中國茶器

 日本茶文化

 日本茶

 日本茶器

 게시판

 새소식

 갤러리

  中國茶文化

  仁, 義, 道, 德이란 - 昌黎先生 韓愈


- 序 -

昌黎先生 韓愈조선에서 출간된 상설고문진보대전(詳說古文眞寶大全)은 고시(古詩), 고문(古文)의 교과서로서 중국에서 널리 알려졌고, 중국 뿐만아니라 조선의 선비들이 글쓰기의 교본으로 읽혀지던 시문집이다. 한나라 이전부터 당, 송대까지 인구에 회자(膾炙)되는 글로써 조선시대 선비들이 문장력을 기르기 위한 기본 텍스트로 수백번 수천번을 줄줄 읽어 왔던 것이다. 그래서 이황선생은 고문진보를 오백번 이상 읽고 쓰고 난 뒤에야 겨우 글짓는데 걸림이 없었다고 하였다.

그 중에 창려선생(768~824)은 한자(韓子)라 불리워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혁혁한 족적을 남겨셨는데, 그 날고 긴다는 문장가들의 글만을 엄선하여 만들었다는 고문진보 문집 전체 10권 중에 창려선생이 남기신 글이 약 2권하고도 반권의 분량이 되며, 동파(東坡)선생이 약 2권에 조금 못 미치며, 그 다음은 유종원, 구양수 선생이 약 1권의 분량에 조금 못 미치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따라서 그의 글이 얼마나 명문장이며, 또한 글을 전개하는 논리나 설득력이 탁월한지를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창려선생의 자는 퇴지(退之)이며 당나라 남양(南陽; 河南省) 사람이다. 송대에 창려백(昌黎伯)에 추증되어 흔히 한창려(韓昌黎)라 불리워진다. 선생은 3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영남지방으로 좌천되어 가는 형을 따라갔으나 곧 형도 죽어 형수의 손에서 양육되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5세에 급제를 하였으나 벼슬길은 순탄하지 못하였다.

일찍이 벼슬길에 올라 감찰어사, 국자박사 등을 지냈으나 819년 헌종이 불골(佛骨)을 맞아들이는 것을 간하는 <논불골표(論佛骨表)>를 올렸다가 조주자사로 좌천되었고, 뒤에 다시 이부시랑까지 승진하였다. 죽은 뒤 문공(文公)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중국 차문화사에서 꼭 언급하고 싶은 사람은 한유, 도잠, 소식 선생이다. 특히 한유선생은 유종원과 함께 글에 감흥이 없고 고리타분한 형식미를 추구하던 당시의 변려문을 배격하고 고문운동을 주도하였으며, 당나라 현종시대에 불교와 도교가 융성하여 유교사상이 훼손될 위기에 처하자 이를 탈피하여 유학을 크게 강조하여 신유학을 여는 기반을 조성하였고, 요순시대에서 부터 공맹(孔孟)으로 전해 내려오던 유교를 국가 근간으로 삼고자 하였다. 이런 노력으로 송대에 성리학을 꽃피울 수 있었다.

중국 차문화사에 한, 중, 일 동아시아 인들의 삶과 의식에서 제일 중요한 덕목으로 여기고 있는 인(仁), 의(義), 도(道), 덕(德)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언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하였고, 공자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관점에서 설명하였지만 아마 한유선생의 원도(原道)에서 뜻을 풀이한 것보다 간결하고 명확한 것은 없다고 판단하여 여기에 올리게 되었다.

- 本 -

博愛之謂仁 : 널리 사랑함을 인()

行而宜之之謂義 : 행하며,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함을 일러 의()

由是而之焉之謂道 : 이(仁,義)로 말이암아 가는 것(굴러가는 것)을 도()

足乎己無待於外之謂德 : 스스로 충족되어, 밖으로 부터 기대함이 없는 것을 덕()


 - 자료참조 : 고문진보(명문당, 을유문화사, 문학동네), 李羨林의 人生(해빗)

 - 작성일자 : 2015년 3월 22일, 불천 씀


 '中國茶文化' 메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