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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의 문장가 소동파선생(1036-1101)


東坡先生 蘇軾동파선생의 문장을 본격으로 읽기 시작한 것은 태학사에서 2001년에 나온 “마음속의 대나무” 읽고부터 본격적으로 책으로도 7~8권을 읽을 것 같다. 특히 마음속의 대나무 서문에 동파선생에 대한 전체적인 개괄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있어 다시 더 보태고 말고 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남행집서(南行集序)는 가우(嘉祐) 4년(1059), 동파 나이 24세때 지금의 호복성 강릉에 도착하여 쓴 글로써 어머니의 정씨(程氏)의 3년 상을 마치고, 3부자가 사천 미산(眉山)에서 당시 송나라 수도인 변경(卞京)으로 돌아오면서 몇 달간 3부자가 산천 문물과 명승 고적으로 두루 보고 감동하여 많은 작품을 지엇는데, 이때 배를 타고 2달여 걸쳐 오면서 지은 글을 묶어 “남행집(남행집)”이라 하고, 강릉(江陵)에서부터 변경(개봉)까지 육로를 이용하면서 지은 글을 묶어 “남행후집”이라 하였다.

남행집서에서 동파는 자신의 글을 쓰는 마음가짐이 나오는데, 이글은 나중에 “문여가화운당곡언죽기”에서 소개된 화가가 그림을 그릴 때 어떻게 이미지를 포착하고 묘사하는지에 대한 동파의 회화이론이며, 남종화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는 것과 맥락이 이어져 있다.

남행집서

현재 국내에 출간된 책중에서 나중에 대만을 여행할 기회가 있다면 꼭 원문을 구입하여 다시 떠듬거려서라도 자세히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조규백교수가 번역한 “중국의 문호 소동파”란 책이다. 이 책은 원래 중국 復旦大學 왕수조(王水照)교수가 “소식(상해고적출판사)”으로 출간한 것을 나중에 대만 만권루출판사에서 재 출간한 것이다.

이 책의 특징은 동파선생의 일대기를 시간 순서대로 엮은 것으로 선생의 지나온 길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어 글을 읽을 때 마다 감동하며 4번이나 읽었는데, 글을 읽다가 보면 나도 모르게 동파선생이 지나온 길을 한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히 들어서 중국지도에 선생이 거쳐간 곳을 표시를 해 두곤 하였다. 한가지 아쉬움이 있다면 책의 표지와 제목이 너무 밋밋해서 좋은 내용의 책이 독자의 주목을 받지 못한 것 같다.

동파선생의 글을 접하고 널리 읽어 온 지 언 8년이 되는 작년 무렵 다시 책을 읽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그렇게 동파선생에 대한 책을 오랫동안 읽었다고 하는데 누가 너에게 동파선생이 어떤 사람이던가요 하면 어떻게 말할래”라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금방 쉽게 몇개의 단어로 답변을 할 수 없었지만, 머리속에 간직한 후 저절로 정리가 되어 답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들었다.

동파선생에 대하여 간단히 말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성죽흉중, 설니홍조, 안왕이불락”이라는 세 단어로 대표된다고 말하고 싶다.

성죽흉중

성죽흉중(成竹胸中)이란 원래 “문여가화운당곡언죽기”에서 언급한 말로, 작가의 마음속에 그리고 싶은 이미지나 쓰고 싶은 글이 이미 완성되어 철철 넘치고 흘러 물상과 내가 일체가 되면서 생동감 있게 뚜렸히 떠오를 때, 대상을 포착하여 한번에 그리거나 쓰여짐을 뜻하는 것으로 젊었을 때 하늘을 찌르는 기상과 패기가 느껴진다.

나는 이때 읽은 “성죽흉중”의 글자에 너무 강렬한 감동을 느껴 전각으로 새겨 두고 오래 오래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마음에 담아 두고 있다가 전각에 미쳐 지내는 소소(SoSo)와 인연이 되었고, 내 뜻을 전하고 부탁하여 받은 전각이 위 사진이다. 특히 죽이란 글자를 사용하지 않고 성성히 살아 있는 대나무 2그루를 배치하여 새긴 전각은 두고두고 나의 소중한 동반자가 되고 있다.

두번째인 설니홍조(雪泥鴻鳥)는 소식이 왕안석의 신법에 비판하자 신법을 주장하는 측에서 소식이 지은 시문(詩文)에서 흠결을 어거지로 찾아내고는 “문자로 현실을 풍자하고, 조정을 우롱하였으며, 황제를 비난하고, 임금을 존중하지 않았다”고 탄핵하였고, 신종(원풍2년, 1079년)은 즉시 이 사건을 어사대에서 심리하라는 어명을 내렸는데, 이것이 바로 유명한 오대시안(烏臺詩案)이다.

이때 소식나이 44세로 호주자사로 있다가 갑자기 어사대 관리들이 명을 받고 달려와 즉시 체포하여 변경(卞京)으로 끌려갔는데 그 당시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경각지간에 태수인 소식을 개나 닭을 몰 듯 하였다”라고 하였으며, 이때 8월18일 수감되고 그해 12월28일 출옥하였는데 소식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었고, 죽음을 넘나드는 재앙을 겪었다. 이때 동생 소철(蘇轍)에게 보낸 시(詩)가 바로 유명한 아래의 시이다.

설니홍조

세번째는 초연대기(超然臺記)에 나오는 안왕이불락(安往而不樂)으로 ‘어디 간들 즐겁지 않겠는가?’ 인데 글을 지은 때는 초기 벼슬살이 시절이지만 나는 이 글을 읽을 때마다 말년의 마지막 유배지인 혜주(惠州)와 해남도(海南島) 담주 생활이 떠오른다. 현실에는 이미 초탈해 있는 한가로운 도인의 마음상태를 느꼈다. 오대시안 후 황주(黃州) 유배를 갔다가 다시 벼슬길에 올라 예부상서에 있을 58세때, 두번째 아내 왕윤지(王閏之)가 죽고, 바로 그 다음해에 혜주로 또다시 유배길에 오르면서 셋째 아들 과(過)와 밀주에서 첩(妾)으로 삼은 세번째 아내같은 조운(朝云)을 데리고 그 험하디 험한 혜주에 도착하였고, 61세(1097년)에 조운마저 죽고, 62세에 더 멀리 떨어진 중국땅에서도 오지중에 오지인 해남도로 다시 유배지(配所)가 옮겨졌다.

해남도 열대 바닷가의 습한 기후로 말미암아 외지인이 버티기 어려운 풍토병이 있고, 유배된 개인의 몸이라 겨우 붙어 사는 불우한 환경속에서 담담하게 하루하루의 즐거움을 찾아 이겨나가는 모습에서 말년에나 딱 어울리는 '안왕이불락’이라는 글자가 머리에 떠오른다. 65세인 1100년 11월에 조봉랑(朝奉郞)에 복직받고, 거주의 자유가 풀려 66세에 상주(常州)로 오는 중에 병에 걸러 그해 7월 28일 별세(別世)하였다.


 ○ 자료참고

     - 조규백(소동파 산문선, 중국의 문호 소동파)

     - 장연(소동파 禪을 말하다)

     - 고문진보, 고문관지

     - 김병애(태학사 마음속의 대나무) 등

 ○ 작성일자 : 2015년 3월 29일, 불천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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