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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대명도공(靑代名陶工感賞)


청나라 강희(康熙 1662-1722) 초기에서 건륭(乾隆 1736-1795) 말기에 이르는 동안은 사회적인 안정기를 거쳐 최고의 번성기를 누린 시기였다.

강희 24년(1685) 무렵에는 자사에 뛰어난 조형미인해 유럽인들의 찬탄을 받아 대외수출이 급격히 늘면서 유럽인들의 취향이 자사제작에 반영되었고, 궁정에서도 자사를 애호하기 시작하여 건륭시기에는 황제가 친히 시를 써넣은 자사가 만들어지도 했다.

강희 년간의 대표적인 도공은 진명원(陳鳴遠)을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자연의 모습을 사실에 가깝게 옮겨놓은 대표작인 호박호는 부더러운 색조와 섬세한 손질과 전체의 기형이 혼연일체를 이루고 있어 자연형 작품의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건륭시기에 혜일공(惠逸公)이 제작한 일공호(逸公壺)는 무명호(無名壺), 맹신호(孟臣壺), 사정호(思亭壺)와 더불어 후세들로부터 4대 명호(名壺)란 칭송을 받고 있다.

그리고 가경.도광연간(嘉年 慶.道光年間 1796-1820, 1821-1850)에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은 도공은 아니지만 3년간 의흥의 현감을 맡았던 진만생(陳曼生)이다.

자사가 점차 쇠퇴하는 경향을 보인 이때 그는 당대 명도공 양팽년(楊彭年)에게 자사호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하여 다호의 모양과 어울리는 자신의 글씨 또는 시구를 적어 장식으로 넣었다.

또한 그는 여러가지 형식의 다호를 직접 고안해내기도 했는데 그의 불멸의 명품인 "만생십팔호식(曼生十八壺式)"인 18개의 다호가 그것이다.

이때부터 자사호는 진만생의 영향을 받아 큰 변화를 일으켜 문인 사회에 전파되어 다시 전아하고 고전적인 멋을 추구하게 되었으며, 다호 바닥에 찍는 낙관에도 세심한 신경을 썼다.

건륭시기에는 알아보기도 힘들게 대충 찍어놓은 도공의 낙관과는 차이가 나게 아름다운 모양을 갖춘 것이 많았는데 이 또한 진만생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 시기에 구응소(瞿應紹)는 자신이 제작한 다호에 매죽(梅竹)을 그려 놓기도 하고, 해서(楷書) 필체로 시구를 적어 넣은 것으로 유명하다.

청나라 말기에 이르러 나라가 혼란되고 경제가 날로 쇠퇴하여 자사호에도 예년의 광채를 잃어가고 있었다. 조형은 가도(嘉道 1796-1850) 시기의 것을 그대로 이어받았지만 기술이 낙후되어 볼만한 것이 없었다.

진광명(陳光明), 황옥린(黃玉麟), 왕동석(王東石)의 작품들이 이 시대를 대표하여 명맥을 유지할 뿐이었다.

  ▣ 진명원(陳鳴遠 약 1651-1722)
호는 학봉(鶴峰), 호은(壺隱), 석하산인(石霞山人) 이라 한다. 다호(茶壺)뿐만아니라 다배(茶杯), 다병(茶甁) 등의 자사제품도 즐겨 만들었다.

"궁궐에는 시대빈(時大彬)의 작품을 탐내나 해외에서는 오히려 진명원(陳鳴遠)의 작품을 귀히 여긴다."라는 말이 있듯이 당시 그의 작품은 해외로부터 더욱 인정을 받기도 했다.

전해지는 작품은 많지 않으며, 규화팔판호(葵花八辦壺)를 대표작으로 꼽는다. 특히 그는 당나라 서예풍을 즐겨 사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 혜일공(惠逸公 약 1698-1766)
그가 제작한 다호의 재질, 크기는 혜맹신(惠孟臣)과 유사하기에 후세 사람들이 그와 혜맹신을 가르켜 이혜(二惠)라 칭하였다.

낙관은 대나무칼, 쇠칼로 새기는 것을 좋아하며 서체(書體)는 초서(草書), 해서(楷書) 등을 즐겨 사용하였다. 유명한 작품은 사뉴원주호(獅紐圓珠壺), 원복맹신소호(圓腹孟臣小壺) 등이며 현재 시중에 그의 모조 작품들이 가장 많이 돌아다니는 실정이다.

  ▣ 진만생(陳曼生 약 ????-????)
본명은 진홍수(陳鴻壽)이다. 호는 만생(曼生), 자는 자공(子恭)이다. 서예와 전각에 뛰어난 그는 1816년 의흥 부근의 한 현에서 현감을 하면서 부터 자사에 심취되어 있었는데 명도공인 양팽년(양팽년)에게 청해 자신을 위해 자사호를 만들어줄 것을 부탁하고 자신이 다호에 글씨를 새겼다.

平蓋合歡壺


이것이 최초로 문인과 도공들이 자사를 매개로 결합되는 계기를 제공하였고, 다른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인사회로 자사를 전파하여 문인들의 취향인 서법, 전각, 회화 등을 자사와 결합시켜 전아하고 고전적인 멋을 추구하게 되었다.

그는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다호의 몸체를 넓게 제작하여 그 위에 글씨 또는 시구를 적어 넣기도 하고 여러가지 형식의 다호를 직접 고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형식의 영향은 지금까지도 식지 않고 전해내려오고 있다.

또 그는 다호의 형식을 고안해 양팽년(楊彭年)에게 제작케한 명품인 만생십팔호식(曼生十八壺式)의 18개 다호는 자사세계의 금자탑이라 일컬어진다.

일반적으로 만생호(曼生壺)의 부리 또는 다호 밑의 낙관자는 제작자인 양평년의 낙관 또는 아만타보(阿曼陀寶) 네 글자의 낙관으로 새겨져있다.

  ▣ 양팽년(楊彭年 약 1772-1854)
자는 이천(二泉)이며 제작수법은 시대빈(時大彬)의 정통기법을 주로 따르고 있다. 문인 진만생(陳曼生)과의 만남은 그의 도공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이며 도예의 깊이 또한 새로운 경지에 도달하였다. 양팽년(楊彭年), 팽년(彭年), 이천(二泉) 등 낙관을 사용한다.

  ▣ 구응소(瞿應紹 약 1796-1839)
도광년간(道光年間) 사람이며 자는 자치(子治), 호는 월호(月壺), 길안(吉安)이다. 그는 다호 몸체에 매화를 그리기 좋아하며 시구를 넣을 때에는 주로 행서(行書)를 즐겨셨다.

이외 청나라의 명도공들은 정녕후(鄭寧侯), 마사현(馬思賢), 허용문(許龍文), 진증원(陳曾元), 범신은(范辛恩), 당중만(唐仲曼), 주견(朱堅), 갈자정(葛子亭), 오월정(吳月亭), 소경남(邵景南), 소이천(邵二泉), 신석(申錫), 오대징(吳大澄), 호원(胡遠), 유국량(兪國良), 단방(端方), 소대형(邵大亨) 등이 있다.


 - 작성일 : 1998.03.05일

 - 작성자 : 不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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