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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白山 金正玉


白山 장인(匠人)은 인류의 문화와 예술을 성립시키는 주체이다. 개인적인 신념에 의해서건 아니면 사회적인 목적에 의해서건 고도의 기능 및 기술에 도달하는데 심신을 투척하는 장인이야말로 인류문화와 예술의 주역이다. 예술은 다름아닌 기능의 완성과 기술의 창안으로써 비롯되는 것이다.

백산(白山) 김정옥(金正玉)의 도자기를 보면서 새삼 장인의 존재가치를 되새기게 된다. 조선백자의 전통이 단절되었음을 애석해 하는 사람들도 백산의 도자기를 보면 거기에 조선의 숨결이 스며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도한다. 이같은 시각은 7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다는 선입견에 근거하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선입견이 백산의 도자기가 가지고 있는 독자성을 잘못 받아들이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백산도예의 7대조(七代祖)인 김취정(金就廷)으로부터 시작되어 김광균(金光均) 김영수(金永洙) 김락집(金洛集) 김운희(金雲熙) 김장수(金長壽) 그리고 김정옥(金正玉)으로 이어지는 200여년의 도자기 가문은 한국에서는 유일하다. 특히 4대째 김운희에 이르면 경기도 광주군 분윈리에 있는 조선왕조의 관요(官窯)를 통해 명장(名匠)으로 이름을 떨친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관요와의 관계는 다름아닌 조선백자의 혈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백산은 그러한 문제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 혈통 문제보다는 조선도자기의 생명을 소생시키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다만 그는 가업으로 어어져 온 그 내력을 통해 조선도자기의 맥만은 놓지 않고 있다. 도자기 가문 7대째가 주는 교훈적인 의미를 채득했기 때문이다.

그의 도자기는 기능으로서의 전수(傳受)와는 다른 차원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가 도예가로서 자립하기까지에는 숙련된 기능의 연마가 필요했다. 그 과정에는 비전(秘傳)의 기술도 터득했음은 당연한 일이다. 7대를 계승하면서 일구어온 영남요만의 특질이 그대로 묻어 나오는 것으로써 백산의 도자기는 그 전통성을 확보하게 되는 셈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도자기는 조선백자의 태(態)가 살아있다. 단순히 기형(器形)의 답습으로 그리 판단하는 것은 아니다. 도자기를 만든 이의 체취를 담으려 하지 않았던 그 무명성(無名性)을 통해 영남요의 전통성은 성립된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의 백산이 자신의 작품임을 숨긴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작품에 낙인함으로써 조선백자의 순결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무명성이란 기능적인 완성 이후에 흔히 오기 쉬운 잔재주를 멀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기형이라든가 시문(施紋) 등에서 개성을 발휘하려는 삿된 욕심을 물리치고 도자기의 생명력만을 탐닉하는 순수한 장인적인 자세야말로 옛 장인들이 고수해온 무명성인 것이다.

그래서 일까. 그의 도자기 중에서는 새로운 형태를 발견하기 어렵다. 옛 형태를 옛 방식으로 만들어 내고 있을 따름이다. 이러한 작가적인 태도는 도자기의 본질에 육박하려는 의지의 결과이다. 더구나 가업 7대의 그 전통을 부단히 의식함으로써 본질을 외면한 어떤 행위도 용납될 수 없음을 스스로에게 다짐한 결과이다.

영남요는 적송(赤松)만을 태우는 망댕이 가마로 유명한데 이는 200년을 한결같이 지켜온 방법적인 전통이다. 잘못 판단하면 그까짓 땔감이 무슨 대수랴 싶지만 도자기란 불의 조화임을 생각할 때 적송만을 고집하는 요(窯)의 존재가치는 각별한 것일 수 밖에 없다. 도자기는 장인의 손끝을 떠나는 순간부터 인간이 부릴 수 없는 자연의 오묘한 조화에 맡겨진다. 그렇다고 보면 그 오묘한 조화의 대부분을 차지한 산화와 환원의 과정에 어찌 무심할 수 있을 것인가. 적송만을 고집하는 데서 생기는 도자기의 특질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데이타가 있는 것은 아니다.

흔히 공예분야에서 비전해온 기법이라는 것이 순전히 오랜 경험에 의해 축적된 일종의 기술이라고 보면 영남요의 가마작업도 이같은 시각에서 이해 될 수 있다. 백산의 도자기는 백자와 분청으로 대별되며 그 중에서 분청으로 분류되는 정호다완 (井戶茶碗)은 그가 이룩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다갈색 우유빛을 연상케 하는 유약을 씌운 정호다완은 백산의 장인적인 기술의 정점에서 얻은 일품(逸品)이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가적인 각고가 어떠했으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도 도자기는 데이타에 의존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렇다. 고려청자의 비색이 전승되지 못한 것도 데이타가 없기 때문이다. 불은 인위적인 데이타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같은 불가해한 도자기의 요변(窯變)을 감수하면서 독자적인 기법을 성립시킨다는 것은 곧 도(道)에 이르렀음을 의미한다. 백산의 도는 도자기의 본질을 직시하는 데서 시작되고 끝맺는다. 도(道)의 완결점. 이것은 타협을 불허하는 새로운 도자기의 생명을 일깨우는 데 존재한다. "정호다완"이 그렇다.

"정호다완" 뿐만아니라. 이른바 명품을 생산해낸 조선시대의 유명한 가마들, 즉 계룡산, 김해 등에서 만들어진 분청도자기를 재현한 작품들도 백산만의 이미지가 살아있다. 그의 손끝은 어떤 흙, 어떤 모양일지라도 새 영(靈)을 숨쉬게 하는 비법을 터득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도자기들은 불에서 나오는 그 순간에 이미 고태(古態)로 물들여진다. 단절된 조선 도자기의 맥을 단숨에 잇고 있다. 그의 작품속에 실현되고 있는 맥은 형태의 답습이나 빛깔의 유사성으로 검증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도자기 그 자체로서의 생명력이 조선 도자기의 멋과 어우러지고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 백산의 조선 도자기에는 느낄 수 있는 맛과 멋이 담겨 있다. 그 맛과 멋을 모르고서야 백산이 실현한 조선 도자기의 맥을 어찌 짚어낼 수 있을 것인가. 여기에는 필경 미적인 진실을 분별해 낼 수 있는 높은 수준의 감상안이 필요하다. 그것은 이심전심과 같은 것이다. 그의 작품에는 자기 과시가 없다. 그래서 수사적인 기교가 없다. 항상 도자기의 본질에 직입 (直入)하려는 의지로 도도하다. 무욕으로써 응답하는 작가적인 자세야 말로 장인의 참모습이다.

백산의 도자기에는 투박함과 청결함과 고고함이 함께 숨쉰다. 투박함은 기교를 버린 재료적인 순수성을 통해 실현되는 것이며, 청결함은 욕심을 제거한 자리에 들어서는 투명성이며, 고고함은 비교개념을 갖지 않는 단아한 형태미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부러 꾸며서는 안될 천연덕스러운 고태(古態)가 주는 매력은 유별난 것이다.

백자의 표면은 처음부터 적지 않는 나이를 먹었다. 그리고 태토에서 비롯된 티(철분)가 친근감을 불러 일으킨다. 그 친숙함이란 조선 도자기의 일반성이다. 오늘에 와서 재현되는 대부분의 조선백자에는 오히려 친숙함을 버리고 있다. 백산의 도자기가 새롭게 인식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화려한 새옷이 아닐지언정 빳빳하게 풀먹여 다린 선비의 무명 두루마기의 그 청정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역시 세월의 때는 벗 삼을만한 가치가 있다. 백산의 도자기가 얻은 생명은 그 진가를 아는 밝은 눈에 의해 비로소 열리는 것이다. 찬찬히 뜯어 볼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는 것은 지루함으로 부터 벗어났다는 점을 말해준다.

분청류의 작품에서 만나는 투박함과 솔직함과 정직성은 남성적인 멋이다. 자연색으로 되돌려지는 백산의 분청에는 확실한 조선의 서기가 서려 있다. 방금 흙으로 빚어 놓은 것 같은 순결성이 불에 태워 얻어진 것이라니 그저 놀랍다.

백산의 도자기는 흙 자체이다. 더 이상은 미사어구가 필요치 않은 흙의 순수성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기에서 우리는 자연을 발견하고, 그 자연을 빙자한 인위적인 아름다움과 만난다.

백산의 도자기는 크고 작음 또는 모양새의 다름에 상관없이 완상할만한 멋과 아름다움이 있다. 실용적이면서도 눈을 능히 즐겁게 하는 그윽한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은 끝내는 마음을 움직여 찬탄을 발설케 한다. 마음으로 짚어가는 흙의 조화를 어찌 형언 할 수 있을 것인가. 때묻지 않은 장인의 순결성과 흙의 순결성이 합치되는 지점에 중요 무형문화재 백산이 서 있다.


白山作品

井戶

金海

斗斗屋

茶器


白山略歷

  • 1941. 경북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 207번지 출생, 부친으로 부터 도예기법 전수받음
  • 1986. 향토문화상 수상
  • 1987. 문경문화상 수상
  • 1988. 제13회 전승공예대전 특별상 외 4회 수상
  • 1989. 일본 동경 京王백화점 개인전 이후 수회 개최
  • 1991. 법무부 장관상 수상
  • 1991. 대한민국 도예명장 선정
  • 1991. 노동부 장관상 수상
  • 1992. 일본 名古屋 名鐵백화점 개인전
  • 1992. 경북도 문화상 수상
  • 1996.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 105호 사기장 지정
  • 1996. 일본 오사카 대한민국 총영사관 특별 초대전 개최
  • 1996. 경북 기능경기대회 심사위원 역임


  •  - 자료출처 : 白山 金正玉님의 도록中 申恒燮씨 글

     - 嶺南窯 : 경상북도 문경군 문경읍 진안리

     - 자료옮김 : 不遷 (1998.6.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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