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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靑白山 林在映


가. 序

나. 七彩釉展을 갖게 되면서

다. 作品

라. 略歷


가. 序

七山先生 오래전부터 농암님으로 부터 수원가까이에서 활동하시는 칠산 임재영님을 전해 듣고, 한번 오시는 기회가 있으면 七彩窯를 같이 방문하기로 했다.

그런데 오랫동안 산에서 들어가 수행을 하신다기에 좀처럼 뵙지 못하다가 달포전에 농암님으로 부터 지금은 七彩窯에서 작업을 하고 계시니 내일 방문하자는 연락이 왔다.

작업장은 의외로 집에서에서 그리 멀지 않는 곳이었다. 한번 가보고는 다시 찾을려면 어렵겠지만 이렇게 가까이 가마가 있다는 것이 내심 기쁘다. 이천에라도 한번 갈라치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닌데...

농암님댁에서 30분도 안되어 도착하니 수원에도 이런 곳이 있는가 싶다. 주위에 논과 밭이 있는 그런 곳이고, 약간 언덕바지에서 작업장이 있었다.

우선 작업장에 들리니 다완에 굽을 깎는 작업이 한창이다. 굽 모양을 튼실하고 선이 굵게 처리하시면서 일본인들의 미의 기준이 아닌 한국적인 미의 기준을 찾아야 하지 않겠는냐고 하면서 이정도는 되야지 떡 비티고 서있을 만하지 않겠느냐고 하신다.

몇장의 사진을 찍고, 작업실 옆동에 만든 전시장에 들러 작품을 감상하고, 거실에 들어갔다. 거실에 있는 불단이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여러가지 생각한 바가 있어 멀리 산에 들어간 이야기며, 산에서 몸 상하지 않고 살려니 배운거라며 요가와 단전에 관한 것을 직접 몸을 움직여 가며 이야기 하신다.

50십 중반인 분 답지 않게 멀구나무서기와 여러가지 앉아서 몸을 푸는 행동을 보이시는데 몸이 그렇게 가벼울 수 가 없었다. 시간에 넉넉히 허락되지 않아 가까우니 다음에 다시 들리겠노라고 여쭙고, 곧 독일 전시회를 위해 준비하고 계시는 사항을 듣고 나왔다.

3월 중순에 다시 방문하려고 전화를 하니 독일로 가셨다는 얘기를 들었다. 다음 장은 독일에서 七彩窯를 준비하면서 서문으로 쓴 글을 옮겼다.

나. 七彩釉展을 갖게 되면서...

나는 한국의 남부 서해바다를 낀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 마을은 첩첩산중 계곡으로 둘러쌓여 있고, 그 산중에서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백제 오층 석탑이 변함없는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당시 서울에서 미술활동을 하셨던 할아버지께서는 전쟁이 터지자 이 지방 산속으로 피난을 하셨다. 할아버지께서는 조그만 암자를 지으시고 농사일을 못하시므로 낮에는 종일 그림을 그리셨다.

그림은 생계의 수단이었고, 수도의 방편이었으며, 평화수호에 대한 간절한 기도였다. 나는 화가로 활동하시던 할아버지와 아버지 밑에서 항상 붓으로 낙서하는 때가 많았다. 그때 나에게 붓은 유일한 친구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미술시간에 선생님으로 부터 너는 장차 미술가가 되겠다는 칭찬을 받았다. 고독하게 자란 나는 종종 바닷가에 나가서 끝없이 이어진 해변 모래사장에 손가락으로 발자국으로 그림을 그렸고 밀물이 밀려와 파도가 되어 나의 그림이 지워질 무렵에서야 달과 별을 동반하여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집으로부터 걸어서 1시간 가량 산등성이를 넘어 가면 할머니 친정집이 있었다. 할머니 댁에는 집안대대로 평상시에 사용되는 온갖 옹기를 만들어내는 공장을 경영하셨다. 그곳에만 가면 나는 찰흙으로 온갖 모양을 만들 수 있는 새로운 놀이거리를 체험 할 수 있었다. 이와같이 어린시절은 그림과 옹기를 만드는 家業의 현장에 있었다.

동국대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거의 30대까지 전통적 구상계열을 고수하였으나 오랜세월을 병에 시달리며 현대적인 추상적 개성을 발견하기 시작했고, 도예역시 전승가업의 형식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추상기법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15년간 실패와 좌절속에서 드디어 5채 도자기가 만들어졌다. 이것은 도자기 역사에서 볼 수 없는 것으로 다만 당나라 시대에 唐三彩가 있었으나 그것은 1000℃ 미만의 낮은 온도로 만든 도기였다.

내가 연구한 도자기는 1300℃ 이상의 전통적 제작으로 하나의 도자기 몸에 여러가지 유약기법을 재현한 것이다. 이런 작업은 유색조를 손색없이 발색한다는 것은 매우 까다롭고 어려워 수 많은 실패와 좌절을 거듭한 끝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에서 시행하는 전승공예전 공모에서 출품하여 입선을 하고 91년에 경복궁 전통 공예관에서 초대전을 발표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시회의 성공을 막론하고 나는 그때까지의 과로와 정신쇠약으로 건강과 경제문제에 부딪쳐 나 자신으로 부터 탈출하고 싶었다.

결국 모든것을 버리고 깊은 산중으로 도피하여 불도 수행자로 변하였다. 밤을 세워 참선을 하였고, 낮에는경전 공부와 염불을 했다. 그러던 어느날 꿈속에서 호를 칠산(七山)으로 하고, 요(窯)장 명칭을 칠채요(七彩窯)로 하라는 계시로 홀로 수행하던 나는 다시 살 수 있는 힘을 부여받기 시작했다.

만 7년간의 수행생활에 가족과 예술에 등을 졌던 나에게 다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용기가 불어났고, 다시 가족품에 들어와 작업장을 보수하고 그림과 도자기 작업을 시도하였다.

七彩의 어려운 난관은 각기 유약의 색조에 있어서 소성온도가 다르고, 시유의 두께가 다르고, 대토의 물질이 달라야 하며, 불의 성질이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같이 각기 성질과 물질이 판이하게 다른 것이 한 몸에 모여 최상의 발색이 나타낸다는 것은 현재에 이르기 까지 어느 곳에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출현이라 하겠다.

91년 五彩展을 서울에서 마친 후, 이제 유럽안 독일 립슈탓트에서 초대전을 맞이 하며, 七彩 도예가 처음 공개전시 하는 의미를 뜻깊게 생각하며, 이 전시가 진행 되도록 배려해 주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다. 作品

삐뚤이 無我文, 36×34㎝

黃釉 黑文水壺, 18×18㎝

白釉 黑文茶碗, 8×13㎝

黃釉 黑文茶碗, 8×13㎝


라. 略歷

  • 1947. 충남출생, 열살때 부터 조부, 부친으로부터 전통 동양화를 전수받음
  • 1984. 서울 동국대학교 대학원 졸업
  • 1977. 제2회 ~ 제23회까지 인간문화재 공예전 출품 입상
  • 1977. 전국 민예품대회(문교부 장관상)
  • 1980. 경기도 민예품대회 1등상
  • 1982. KBS 방송국 도예전 은상
  • 1983. 국회의사당 IPU총회 기념전초대
  • 1988. 일본 전일전 동양화 국제대상
  • 1988. 서울 올림픽 초대전
  • 1988. 도자기 모자익 건축완성(수원성 옆)
  • 1991. 경복궁 전통 공예관 초대전
  • 1997. 일본 요꼬하마시 초대전
  • 1999. 독일 립슈탓트 시립전시장 초대전

  • ○ 주요 소장처

  • 1982년 부터 동국대학교 박물관
  • 1983년 부터 경기도청
  • 1990년 부터 일본 동경 도구리 미술관
  • 1990년 부터 일본 동경 민예 박물관
  • 1990년 부터 일본 동경 정원 미술관


  •  - 七彩窯 : 경기도 수원시 권선구 입북동(과거)

     - 자료작성 : 1999. 3.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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